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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AI 시대는 다시 "사다리 걷어차기" 시대

Zeitlosigkeit 2026. 6. 13. 07:57

지금 AI 시대는 다시 "사다리 걷어차기" 시대입니다. 2020년 책 "Kicking Away the Ladder" (Ha-Joon Chang) 소개합니다.

책 속으로

19세기 말 아주 짧지만 세계 경제에 자유 무역 체제가 팽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1846년 영국은 곡물법Corn Laws을 폐지하면서 일방적 자유 무역 체제로 전환을 결정했다(이 체제는 1860년대에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었다). 다만 이 결정은 당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경제 강국이라는 영국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하여 제국주의 정책과 복잡한 관련을 맺고 내려진 것이었다. 1860년부터 1880년 사이, 유럽 각국은 보호 관세를 상당 수준 낮추었다. 같은 시기에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많은 나라가 식민지화되었거나 중남미 국가들, 중국, 타이(당시 시암), 이란(당시 페르시아), 터키(당시 오스만 제국) 등처럼 소수 명목상의 ‘독립’ 국가들은 불평등 조약 등을 통해 자유 무역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물론 이 기간 중에도 매우 높은 관세 장벽을 유지한 미국 같은 예외도 있었다.

선진국들은 일단 최첨단 기술 국가가 되고 나면 기존의 경쟁자나 잠재적 경쟁자와 격차를 벌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활용했다. 이런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라는 바로 ‘선두 경제frontier economy’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영국일 것이다. 영국은 잠재적 경쟁자에게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규제했고(숙련공의 외국 이주, 기계류 수출 등에 대한 규제 등이 그 예이다), 발전 정도가 낮은 나라들에게는 시장을 개방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필요하면 무력도 사용했다. 그러나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 식민지가 아닌 이상 ‘따라잡기 단계’의 국가들도 그냥 팔짱끼고 앉아서 이런 제한적 조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마침내 무역을 자유화하고 자유 무역 사상을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후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산업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자유 무역을 시행했던 시기(1860~1932)의 수준으로 시장 개방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은 영국처럼 관세율을 0퍼센트로 낮춘 적도 없었을뿐더러 ‘숨은hidden’ 보호 조치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자발적 수출 억제, (다자간 섬유 협정을 통한) 섬유와 의류에 대한 쿼터제, (영국의 곡물법 폐지 조치와 대비되는) 농업 보호와 보조금, (특히 반덤핑 관세 등을 통한) 일방적 무역 제재 등이 그 예들이다.

영국을 따라잡기 위한 독일의 분투. 아마도 그런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그라프 폰 레덴Graf von Reden일 것이다. 그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정부 지원 아래 산업 스파이 활동과 숙련공들을 유인하는 전략을 써서 더 발전한 나라, 특히 영국으로부터 철 정련 기술, 코크스 용광로, 증기 기관 등의 선진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또 다른 주요 인물로는 1816년 재무부 내 통상산업 국장으로 임명된 페터 보이트Peter Beuth가 있다. 보이트는 1820년에 유명한 거베르버인스티투트Gewerbeinstitut(기술학교)를 설립해서 숙련공들을 훈련하고, 새로운 기술의 정보를 얻기 위한 외국 여행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외국산 기계들을 모아서 복제품을 만들고(원본은 민간 기업들에게 주고), 특히 기계, 증기 기관, 기관차 산업 부문에서 창업을 지원했다.

18세기 초 영국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던 프랑스는 정부가 나서서 영국에서 숙련 기술자들을 대규모로 빼내 오려는 시도를 했다. 또 혁명이 나기 전까지 당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정부도 목표로 하는 기술을 획득해 오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고, “외국 제조업 감찰관Inspector-General of Foreign Manufactures”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관리까지 임명해 외국 기술을 훔쳐 오는 일을 조직하게 하는 등 산업 스파이 활동을 장려했다. 프랑스가 영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혁명이 날 즈음까지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정부의 이런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독일 기업들은 여러 방법으로 이 법을 피해 나갔다. 원산지 표기를 제품 자체에 하지 않고 포장에 해서 일단 포장을 벗겨내고 나면 소비자가 원산지를 알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 하나의 예이다(수입 시계 및 쇠붙이를 다듬는 줄 등에 많이 사용한 방식이라고 알려졌다). 혹은 분해를 해서 보낸 다음 영국에서 다시 조립하기도 하고(피아노 및 자전거에 널리 사용된 방식이다), 실제로 확인 불가능한 곳에 원산지 표기를 하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윌리엄스Williams는 이렇게 기록했다. “영국에 다량의 재봉틀을 수출하는 한 독일 회사는 ‘싱어Singer’와 ‘노스 브리티시 재봉틀North-British Sewing Machines’ 등의 문구는 눈에 잘 띄는 곳에 표기하고, ‘독일산Made in Germany’이라는 문구는 재봉틀 페달 밑에 작게 넣었다. 전설적인 이 원산지 표시를 확인하려면 재봉사 여섯 명 정도가 힘을 합쳐서 재봉틀을 뒤집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서는 주요 기술이 너무 복잡해지면서 신기술을 완전히 습득하려면 숙련 기술자와 기계류를 수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되었다. 숙련 기술자의 이민과 기계류 수출을 금하는 법이 영국에서 폐지되었다는 사실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다수의 산업 분야에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 특허 사용 허가를 통해 능동적인 기술 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술 이전의 통로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지적 재산권 보호에 관한 정책과 제도가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고, 결국에는 특히 미국과 프랑스 등 기술적으로 더 앞선 나라들의 압력으로 1883년에 특허에 관한 파리 협정, 1886년에 저작권에 관한 베른 협정Berne Convention 등 국제 지적 재산권 체제가 출범하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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